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재박/선수 경력 (문단 편집) == 개요 == 프로에서 모든 포지션에서 뛴 적이 있으며, 역대 최고의 [[유격수]] 중 하나로 손꼽힌다. 그야말로 [[5툴 플레이어|공격, 수비, 주루 삼박자를 모두 갖춘 선수]]라는 찬사를 받았다. 1977년 [[니카라과]] 슈퍼월드컵(대륙간컵이라고도 불림) 대회에서의 활약 이후 [[클리블랜드 인디언스]], [[볼티모어 오리올스]]가 그에게 영입 제의를 한 적이 있고, 특히 [[요미우리 자이언츠]], [[롯데 오리온즈]], [[한신 타이거즈]], [[한큐 브레이브스]], [[오사카 킨테츠 버팔로즈]] 등 [[일본프로야구]]팀들이 김재박 본인과 한국 야구계 고위인사들을 따라다니며 몇년동안 영입 노력을 기울였을 정도였다. 하지만 병역문제와 국가대표 주전 유격수를 놓치고 싶지 않았던 한국 야구계 분위기가 장애물이 된데다가 1981년에 [[한국프로야구]] 창설이 발표되었기에 김재박의 외국행은 실현되지 못했다. 특히 [[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/1982년|1982년 세계야구선수권대회]] 대 일본전 8회말에 시전한 일명 '''[[개구리]] [[번트]]'''는 야구인들이라면 누구나 봤을 명장면으로 김재박의 야구센스를 보여주는 장면. [[https://youtu.be/f2TG5I0UunI?t=1m38s|1분 40초부터 보자]]. 유격수 백넘버는 7번 이라는 공식을 만든 장본인. 흔히들 말하는 김진영 - 박정일 - 하일 - 김재박 - [[류중일]] - [[이종범]] - [[박진만]] - [[강정호]] - [[김하성]]으로 이어지는 대한민국 [[국가대표]] 유격수 계보의 대표 선수로 호타준족 5툴 플레이어는 김재박이 시초라 알려진다. 야구 오래본 사람들은 김재박 이후로 그만한 유격수는 없다며 계보 같은 거 인정 안 하는 경우들도 많다.[* 1960년대 실업야구 시절부터 야구를 봐온 [[하일성]] 해설위원도 역대 최고의 유격수로 김재박을 꼽았다.] 20년이 넘게 지났는데도 그만큼이나 인정받고 있는 셈이다. 대체로 이 시기 김재박에 대한 회고는 '''아예 수준이 다른 유격수.''' "다른 선수들이 고교야구 수준의 수비를 하고 있을 때 혼자 프로야구 유격수처럼 플레이했다"는 기록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. 특히나 [[한국실업야구]] 특성상 시즌이 끝난 후엔 [[한국화장품]] 선전과에서 근무하는 직장인으로써도 활동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더욱 대단한 것들이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